영국의 폭군은 여러 명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16세기 영국의 헨리 8세일 것입니다.
헨리 8세는 1509년에 영국 왕위에 오르면서, 청년 시절부터 군사적인 업적과 외교적인 능력으로 영국을 강대국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개인적인 삶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캐서린 아라곤 왕비와 결혼했지만, 아들이 없어 이혼을 요구하고 새로운 왕비 앤 볼린과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앤 볼린과의 결혼 생활이 잘 안돼자 그녀를 몰래 죽이고 새로운 왕비 제인 시모어와 결혼했습니다. 이어서 4번째 왕비 앤 클리브와 결혼했지만, 이번에도 아들이 없어 이혼을 하고 다섯 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와 결혼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들을 얻었지만 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어, 여섯 번째 왕비 캐서린 파리와 결혼하기 전에 죽었습니다.
헨리 8세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종교개혁을 주도하면서 대량학살과 처형을 일삼았습니다. 처음에는 가톨릭 신앙을 수용했지만, 이혼 문제로 로마 교황과 대립하면서 이를 핑계로 종교개혁을 주도했습니다.
그의 종교개혁은 처음에는 선교사들과 침례교도들을 처형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그의 반대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대량학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그의 최종 결혼상대인 캐서린 파리와 관련된 이혼문제로 토막난 가톨릭교도들을 대량학살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결국 헨리 8세는 자신의 건강상태와 정치적인 압력으로 이혼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1547년에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폭군적인 행보는 국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종교개혁은 영국 교회의 형성과 함께 이어졌으며, 가톨릭교가 영국에서 실질적으로 사라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그의 통치기간 동안에는 영국의 경제와 군사력이 강화되었으며, 영국이 유럽 대륙과 더 강력한 외교적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대량학살과 처형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의 폭군적인 행보는 그가 사랑과 배려보다는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폭군으로 평가되게 되었으며, 영국 역사에서는 그의 이름이 그의 축복과 그림자를 동시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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