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기는 사실]

#30. 인광석. 모로코와 서사하라.

소안-유리엘 2023. 6. 28. 13:25

이전에 나우루에 대해 얘기할때 인광석을 빼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광석 즉 인(P)은 비료에 들어가는 핵심재료입니다. 인의 시세에 따라 비료시세가 변하고 비료 시세에 따라 곡물가격이 변동이 오기도 합니다. 요즘 핫한 산업이 전기자동차 산업입니다. 전기차에는 배터리, 모터등이 주 된 부품인데 이 중 배터리를 제조하는데 여러 방식중에서 인을 사용하게 되는 방식이 인산철배터리입니다. 즉 인광석(인)이 전기차 산업에서 중요광물로 부상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주제는 모로코의 인광석 매장량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2차세계대전이 막 끝난 시점인 1947년 모로코 남부와 서사하라 북부에서 인광석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매장량은 단연 세계 1위가 되어버립니다.

 

-모로코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국가로, 사하라 사막과 대서양에 접한 지리적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슬람 문화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영향을 받은 나라입니다.

 

모로코는 오랜 역사 동안 다양한 문명과 외부 제국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페니키아인, 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 이슬람 제국 등이 모로코 지역을 지배했고, 모로코는 이슬람 제국인 무라빗 제국의 중요한 영토였습니다. 이후 모로코는 몇 차례의 정치적 변동과 제국의 통치를 겪으며 현재의 형태로 이어져 왔습니다.

 

현재 모로코는 이슬람 왕국으로서 국가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로코는 입헌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국왕이 행정적, 법적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다당제가 시행되고 있으며, 국회와 정당체계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모로코는 다양한 자연환경과 관광 명소로 유명합니다. 사하라 사막을 비롯하여 해안선, 산악 지형, 역사적인 도시들 등 다양한 관광 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마라케시, 카사블랑카, 페스 등은 모로코에서 인기 있는 관광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이슬람 문화와 전통, 수공예, 음악 등 독특한 문화적 요소도 모로코의 매력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경제적으로는 농업, 어업, 광업, 관광 등이 주요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모로코는 특히 국내 자원을 기반으로 한 인공비료, 섬유, 석회석 등의 생산으로 유명합니다. 관광 업무의 발전과 해양 자원의 활용도 모로코의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 서사하라

서사하라( Western Sahara)는 북아프리카 서부 사막 지역에 위치한 영토로, 모로코와 모로코의 통치 아래 있던 스페인 사이의 영토 분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부터 유목민(베르베르족)만 거주했었던 지역입니다. 주로 사하라 사막의 일부로 알려져 있으며, 자연환경이 거의 무인지대로 되어 있습니다. 위의 지도에서 보듯이 국경선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모로코와 서사하라의 경계는 점선입니다.

 

 

현재 인구는 50만명 정도로 추정되며 그중에서도 모로코인을 빼면 거의 10만명 정도가 순수한 서사하라인들입니다.

 

-과거부터

과거부터 많은 북아프리카 왕조들이 들어섰다 무너졌다를 반복하던 시기였을때는 모로코와 서사하라는 같은 국기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먼 얘기이고 가까운 스페인 식민지 시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위 지도에서 보면 서사하라 왼쪽에 카나리아 제도가 있습니다. 이곳은 스페인의 아주 오래된 식민지이자 해외영토이고 넓은 대서양에서 잡히는 수많은 물고기를 잡는 어업이 활발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잡은 물고기를 본토나 유럽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훈제나 소금에 절인 후 말려서 이동을 해야했습니다. 어부들은 섬에서 말리는 것보다 서사하라 지역 해변가에서 말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곳 해변가에서 말리면 다른 곳에서 한달 이상 걸리는 기간이 하루나 이틀이면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선을 말리고 있으면 내륙에 있던 유목민들이 와서 약탈하거나 사람을 죽이는 일들이 빈번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스페인의 시대는 저물고 영국과 프랑스가 해외 식민지를 활발히 개발하며 180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엄청난 강국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영국은 위에서 아래로 식민지를 연결하기 위해서 엄청난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잦은 충돌과 전쟁의 위협이 있게 되자 1889년 베를린 회담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아프리카를 어떻게 갈라먹을까 같이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때 스페인이 한 숟가락 얹으면서 서사하라를 스페인의 식민지로 확정하였습니다. 모로코(알라위 왕조)는 계속 프랑스와 영국에 대항하여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1910년대에 들어서 모로코 북쪽과 남쪽 일부분(스페인령 식민지), 모로코 거의 전지역(프랑스령 식민지)이 식민지화 되었습니다.

 

1955년에 프랑스령 모로코는 독립하였고 1956년에는 스페인령 모로코도 독립하여 지금의 모로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사하라는 여전히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 서사하라에도 독립의 열풍이 불어왔고, 그 당시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자 이후 민주화 운동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습니다. 별것도 없는 사막만 있는 곳에서 전쟁을 더 이상 하기 싫었던 스페인은 모로코에 영유권을 넘겨주고 철수 하였습니다. 이에 반발하여 서사하라인들은 투쟁을 계속하였지만, 주변국들과의 갈등, 내부 문제등을 거쳐 현재는 서사하라의 거의 모든 지역은 모로코가 실효지배하고 있고, 약간의 땅(거의 볼모지)은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확국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대충 선을 그어놨는데 대충 그정도입니다. 왜 이렇게 땅이 나뉘게 되었는가는 복잡하지만 간단히 얘기하면 모로코가 저 빨간선을 잇는 2700킬로미터가 넘는 모래장벽(모로코 장벽)을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 현재

모로코는 서사하라를 "남부 주"라고 부르며 주권 영토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간주합니다. 지역 정부와 선출된 대표를 포함하여 해당 지역에 행정 구조와 기관을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분쟁지역으로 보고 있다.

 

모로코와 서부 사하라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이 지역에 매장된 인산염의 존재입니다. 인산염은 주로 농업 비료에 사용되는 귀중한 광물 자원입니다. 서부 사하라 사막은 상당한 인산염 침전물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경제적으로 중요합니다.

 

하지만 분쟁지역으로 보고 있기에 EU에서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광물은 사용하지 않기로 결의 되어 있습니다. 즉 모로코는 이 분쟁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세계 1위 매장량을 자랑하는 인광석을 대량으로 채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국제적으로도 서사하라산 인산염 거래를 중단하거나 규제하라는 법적 문제와 요구가 있었습니다. 일부 국가 및 회사는 적법성 및 원산지 윤리에 대한 우려로 인해 해당 지역에서 인산염 수입을 중단했습니다.

 

서사하라는 거의 부족집단 체제입니다. 모로코에 동조하는 부족도 있고, 반대하는 부족도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 사회와 이곳의 모든 국민들이 단합하여 분쟁을 해결하고 서로 위할 수 있는 분위기로 반전하지 않는 이상, 모로코와 서사하라의 동반길은 무색해질 것입니다.